백화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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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聖經)을 통해 본 '용서(容恕)'의 원리(原理)
2007. 2. 9 (土)  

아침부터
작은 눈송이가 날리기 시작하더니...
한낮이 되어서야
눈(雪)이 그치고 해가 났습니다.

눈 위로 비치는 햇살이
소복히 쌓인 눈 위로
금가루 은가루를 뿌려 놓은듯
반짝거립니다.

아!!
감탄(感嘆)이 저절로 터져나오도록
아름답습니다.

백설(白雪) 나라
눈의 여왕(女王)이
지어입으면 어울릴 것 같은
아름다운 비단필처럼, 벨벳처럼
그렇게 깨끗한 반짝이는 아름다움으로
우아(優雅)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성경(聖經)에 나오는
다윗의 시편(詩篇)이 떠오릅니다.

우슬초(牛膝草 Hyssop)로
나를 정결(淨潔)케 하소서.
내가 깨끗해지리이다.
나를 씻어 주소서.
눈보다 더 희어지리이다.

            시편 51장 7절

Cleans me with hyssop,
and I will be clean ;
wash me, and I will be whiter than snow.

                          Psalms 51 : 7

'너희 죄(罪)가
주홍(朱紅 scarlet) 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너희 죄(罪)가
진홍(眞紅 red crimson)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어지리라.

              이사야 1장 18절

Though your sins are like scarlet,
they shall be as white as snow ;

Though they are red as crimson,
they shall be like wool.

              Isaiah 1 : 18


이 말씀은 항상
큰 감동(感動)으로 와닿습니다.

'용서(容恕)의 원리(原理)'가
그대로 투영(投影)된
놀라운 은혜(恩惠)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용서(容恕)'는
'사랑'의 가장
'적극적(積極的)인 표현(表現)'이기도
하니까요.

'용서(容恕)'를 보여주는
뜨거운 감동(感動)의 사례(事例)를
성경(聖經)을 통해 살펴보고
그 원리(原理)를 풀어 봅니다.

베드로(Peter)와 유다(Judas)에게서...

예수님의 12제자였던
베드로(Peter)와 유다(Judas)는
둘 다 스승인 예수님을 배신(背信)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 배신(背信) 후(後)
전혀 다른 선택(選擇)을 합니다.



그 때
배반자(背信者) 유다(Judas)는
예수께서 유죄 판결(有罪判決)을
받으신 것을 보고
자기가 저지른 죄(罪)를 뉘우쳤다.

그래서
은전(銀錢) 서른 닢을
대사제(大司祭)들과 원로(元老)들에게
돌려주며
"내가 죄 없는 사람을 배반하여
그의 피를 흘리게 하였으니
나는 죄인(罪人)입니다"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알 바 아니다.
그대가 알아서 처리(處理)하라" 하고
말하였다.

유다(Judas)는 그 은전(銀錢)을
성소(聖所 into the Temple)에
내동댕이치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다.

대사제(大司祭)들은
그 은전(銀錢)을 주워들고
"이것은 피값이니
헌금궤(獻金櫃)에 넣어서는
안되겠소" 하며 의논(議論)한 끝에
그 돈으로 옹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墓地)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 밭은 오늘날까지
'피의 밭'이라고 불리운다.

                    마태 27장 3절~8절


돌이킬 수 없는
너무도 큰 죄(罪)를 지은 유다(Judas)는
'용서(容恕)'받기를 포기(抛棄)한채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自殺)하고 말았습니다.



마태26장 31절~35절에는
'베드로(Peter)의 장담'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고
장담하는 베드로(Peter)에게

예수님은
"오늘 밤 닭이 울기 전(前)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라고 하셨고 그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부터
예수님의 안위(安危)가 걱정스러워
몰래 따라다니던 베드로(Peter)는

자신이 위험(危險)에 처(處)하게 되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고...
바로 그 때 닭이 울었습니다.

베드로(Peter)는 그제야

"닭이 울기 전(前)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라
몹시 울었다고 성경(聖經)에
기록(記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復活)하신 후(後)
세 번째 제자(弟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Simon Peter)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Simon son of John,
do you truly love Me more than these?"


베드로(Peter)가
"예, 주님, 아시는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Yes, Lord,
You know that I love You."

예수께서는
"내 어린 양(羊)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Feed My lambs."

예수께서 두 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Simon son of John,
do you truly love Me?"


"예, 주님, 아시는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Yes, Lord,
You know that I love You."

베드로(Peter)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양(羊)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Take care of My sheep."

예수께서 세 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베드로(Peter)는
세 번이나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는 바람에 마음이 슬퍼졌다.

그러나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Lord, You know all things ;
You know that I love You."


그러자 예수께서
"내 양(羊)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분부(分付)하셨다.

"Feed My sheep."

                       요한 21장 15절~17절


이 성경구절을 읽을 때마다
감동(感動)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사랑으로 고양(高揚)되어
그 벅찬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오릅니다.

베드로(Peter)는
정말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극한(極限)의 공포(恐怖)스런 상황과
마주하게 되면서 죽음의 공포(恐怖)로
움츠려들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否認)하는
슬픈 배신(背信)을 세 번이나.. 하게 됩니다.

그리고나서
너무도 괴로워, 너무나 슬퍼서
몹시 울고 또 웁니다.



여기에서부터
유다(Judas)와 베드로(Peter)의
운명(運命)이 갈립니다.

유다(Judas)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베드로(Peter)는
위대한 사도(使徒)가 되어
진리(眞理)를 전(傳)했습니다.

그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유다(Judas)는
자신이 저지른 죄(罪)가
얼마나 무서운 죄(罪)인가를
뒤늦게 깨닫고...

'용서(容恕)'를 구(求)할 생각도,
'용서(容恕)'를 받으리라는 생각조차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절망적(絶望的)이었던 그에게는
다른 어떤 선택(選擇)도 보이지 않았고
죄(罪)의 무게에 짓눌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Peter)는
너무도 괴로워, 너무나 슬퍼서
몹시 울고 또 웁니다.

그러나
그는 믿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배신(背信)'의 죄(罪)보다
하느님의 '용서(容恕)'가 더 크다는 것을요.

그는 예수님을 진실(眞實)로 사랑했고
그분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알았습니다.

자신의 이기적(利己的)이고
못난 겁장이의 모습조차도
용서(容恕)하시고 사랑하실거라는 것을
믿었고, 알았습니다.

자신(自身)이 지은 죄(罪)보다
하느님의 '용서(容恕)'가 더 크시다는 것을
믿었고,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유다(Judas)와 같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무지(無知)하고 악(惡)한
전철(前轍)을 밟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주님을 배신(背信)했다'는
깊은 자책(自責)의 상처(傷處)는
치유(治癒)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 때
부활(復活)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Peter)를 찾으셨고
세 번씩이나 베드로(Peter)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사랑'을 확인(確認)하는 질문(質問)을
하시고 또 하시며
그 대답(對答)을 듣습니다.

세 번 반복(反復)해서 물으십니다.
베드로(Peter)가 세 번이나
배신(背信)했다고 해서
세 번이나 다짐을 두신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Peter)가
목숨처럼 사랑했던 스승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수 있을 것 같았던 예수님을

죽음의 공포(恐怖)에 떠는
자신의 연약(軟弱)함으로
세 번이나 부인(否認)할 수 밖에 없었던

그는
그런 자신을 절대로
용서(容恕)할 길이 없어

그 쓰라린
배신(背信)의 상처(傷處)는

도저히
자신(自身)을 용서(容恕)하기 힘든
절망(絶望)의 독(毒)이 되어
아뢰야식(阿賴耶識 Alaya-vijnana)의
깊은 곳까지 슬픈 각인(刻印)을
남겼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Peter)가
세 번 예수님을 배신(背信)했던
그대로
세 번 사랑을 고백(告白)하게 하십니다.

그의
아뢰야식(阿賴耶識 Alaya-vijnana)에서
드러났었던
죽음의 공포(恐怖)를 이기도록
치유(治癒)해 주신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恐怖)를 이기는
더 큰 '완전(完全)한 사랑'으로...

그 후
베드로(Peter)는
놀라운 사랑과 용서(容恕)의
완전(完全)한 치유(治癒)를 경험(經驗)하고
거룩한 변화(變化)의 과정(過程)을 지나

고난(苦難)과 시련(試鍊)에도
어떠한 역경(逆境)에도 굴하지 않는  
불굴(不屈)의 거룩한 의지(意志)로

자신(自身)에게 주어진
거룩한 미션(Mission)을
충실(充實)하게 열정적(熱情的)으로
최선을 다해 훌륭히 다 이루었고
예수님처럼 십자가형(十字架刑)으로

그러나
사랑하는 스승이며 주님이신
예수님께로 향(向)한
지극(至極)한 사랑과 공경(恭敬)의 예(禮)로
십자가(十字架)에 거꾸로 매달린채  
장렬(壯烈)하게 순교(殉敎) 했습니다.


평범(平凡)한 어부(漁夫)였던
한 우직(愚直)한 사나이가

하느님의 아드님인
메시야(Messiah)를 만나

'완전(完全)한 사랑'으로
'완전(完全)한 존재(存在)'로
바뀌어 가는 아름답고도
놀라운 여정(旅程)입니다.

진리(眞理)를 위(爲)한
이 '사랑 이야기'는
어떤 'Love Story' 보다도
진한 감동(感動)으로
아름답게 와 닿습니다.^^*


출처: 안나불 미니홈피 '공적일기(空跡日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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